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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스마트폰을 확보한 중국 등 해외의 작업장에서 의도적으로 특정 노래를 실시간 차트에 올리기 위해 신곡 발표 직후 여러 대의 기계로 스트리밍하기 시작하면 빠르게 순위가 올라가는 반응이 나타난다.

 

지금은 삭제된 한 가수의 짧은 소셜미디어(SNS) 글이 2019년 세밑 가요계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OO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SNS 글을 올린 아이돌그룹 블락비의 박경은 실명으로 언급된 ‘사재기 의혹’ 당사자들이 반발하자 이후 해당 글을 지웠다. 그러나 이미 가요계 내부는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해당 의혹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함께 각종 편법 마케팅 방식을 규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경이 SNS에 실명으로 거론한 가수들은 대부분 최근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 등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최상위권에 진입한 적이 있는 가수들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유명 가수의 신곡이 나왔을 때도 흔치 않을 정도로 빠르게 차트에 올라가 순위가 급상승하는 모습 때문에 실제 팬들이 음원을 청취한 것이 아니라 작업장의 ‘기계’를 동원했다고 본 것이다. 박경이 음원 사재기 의혹의 대상이 되는 가수들을 ‘저격’하는 글을 올리자 힙합 래퍼 마미손 역시 신곡 가사를 통해 “기계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냐 내가 이세돌도 아니고”라며 음원 사재기를 비판하는 등 가요계 안팎의 지지도 이어졌다.

 

실시간 차트, 100위까지만 반영

 

사실 ‘음원 사재기’라는 개념은 과거 LP나 카세트테이프, CD 같은 실물 음반을 사서 가요를 감상하던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편법이다. 그러나 사재기하는 방식도, 사재기를 통해 얻는 불법적인 이익의 규모도 크게 달라졌다. 일일이 음원이나 앨범 전체를 구매·다운로드하는 대신 음원 사이트에서 스트리밍 방식으로 쉽게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되면서 실시간으로 인기순위가 반영되는 목록인 ‘차트’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것이다.

 

다수의 스마트폰을 확보한 중국 등 해외의 작업장에서 특정 노래를 의도적으로 실시간 차트에 올리기 위해 신곡 발표 직후 여러 대의 기계로 스트리밍하기 시작하면 빠르게 순위가 올라가는 반응이 나타난다. 많게는 동시에 수만 개 단위의 동원된 기계로 24시간만 스트리밍 작업을 돌려도 대중에게 전혀 인지도가 없던 가수와 신곡이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스트리밍을 반복하는 작업장뿐 아니라 실시간 차트에 오른 인기곡을 중심으로 가요를 감상하는 청취자들이 해당 노래에 더 자주 노출돼 자주 듣게 되면서 작업이 끝나도 순위는 계속해서 상위권에 오르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하는 곳들이 늘어나며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는 최선혜씨(31)는 “인기가요를 틀어줘”라는 한마디와 함께 영업을 시작한다. 음성을 자동인식한 인공지능 스피커는 최씨가 가입한 음원 사이트의 인기차트를 바탕으로 매장 안에 가요를 틀어준다. 최씨가 말하듯 “저마다 다들 취향이 다른 손님들이 오는 가게에서는 그나마 가장 인기 있는 곡들을 틀어두는 게 무난할 것 같아서” 틀어둔 실시간 차트의 노래는 100위까지만 있다. 어떻게든 100위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대중의 귓속을 파고들 더 많은 기회가 생기지만 101위에서 멈춘다면 결코 넘어서기 힘든 한계를 맛봐야 한다.

 

음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차트 자동재생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는 일단 100위권 안에 들어가 차트에 진입하는 것을 넘어 최상위권까지 노려야 안정적인 인기몰이가 가능하다. 그 때문에 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는 기획사나 마케팅 업체가 주장하듯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한 입소문 마케팅만으로 차트 순위 상승이 가능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문제는 실제로 해외 작업장을 이용한 음원 사재기 작업이 이뤄졌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여기에 정당한 마케팅으로 위장한 사재기 작업 전문 업체가 접근해 왔을 때 일부 기획사는 투자 대비 수익을 고려해 이들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브로커들의 말대로는 ‘마케팅’, 실제로는 사재기, 이게 잘만 이루어지면 1억~2억원을 투자하는 만큼 차트 10위권 안에 올라 수익이 서너 배가 나올 수도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점차 사재기 논란이 심화되면서 여론을 의식해 주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려운 기획사 형편을 반전시키기 위해 과감히 사재기에 나서는 곳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브로커 유혹에 넘어가 거액 투자

 

차트 진입을 위한 음원 사재기 의혹이 논란을 부르자 본격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대규모 토론회가 2015년에 이어 4년 만에 열렸다. 지난 12월 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개최한 ‘온라인 음원차트와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공정성 세미나’에서는 마케팅으로 위장한 위법적인 사재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마케팅 업체와 기획사가 정보를 공개하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부회장은 “특정 몇몇 바이럴 업체에 홍보를 맡기면 음원차트 순위가 빠르게 올라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에 홍보를 맡긴 가수들은 차트 순위에는 있지만 대중에게는 평가가 좋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에서는 전혀 규제하지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사실 이번 기회에 모두 다 까놓고 이들 마케팅을 하는 회사들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원 사이트가 단순히 인기차트를 통해 ‘남이 듣는’ 음악이 어떤 곡들인지를 보여주기보다는 소비자들 본인의 취향에 맞는 연관곡들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요계 대형 기획사와 관련을 맺고 있던 음원 사이트 업체에서 관련 기획사 가수의 노래를 중심으로 추천 목록에 올린 문제가 과거에 발생한 바 있어 추천 서비스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마케팅 업체 정보공개와 함께 아예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자체를 폐지하는 것을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으로 꼽는다. 현재 대부분 주요 음원 사이트는 실시간 순위와 함께 일간·주간·월간 단위로 순위를 공개한다. 음원 사이트 업체의 주장처럼 차트를 요구하는 가요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다고 해도 주간이나 월간 단위로 보다 긴 시간 동안에 집계된 순위만 공개한다면 현재의 폐해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가요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명길 한국매니지먼트연합 상임이사는 “사재기 의혹 문제는 음원차트를 만드는 음원 사이트 업체가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니터링 방안을 마련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라고 밝혔다.

  

반면 음원 사이트 업체들은 과거 수 년간 차트 공정성 확보를 위해 운영 정책을 보완해왔다고 설명했다. 홍세희 지니뮤직 플랫폼사업 본부장은 “인위적 순위 진입을 막기 위한 추천곡 제도를 폐지하고 차트 반영 시간 기준을 변경하기도 했다”면서 “내부 조사도 했지만 사재기를 의심할 만한 패턴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상규 드림어스컴퍼니 미디어콘텐츠 부문장도 “음원 사이트들은 저작권위원회가 운영하는 로그 수집 시스템에 매일 데이터를 보내고 있다”며 “음원 사이트가 아니라 음원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이 데이터를 공개해 정당한 마케팅이라는 것을 입증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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