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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13:25

윤동주 (尹東柱,1917.12.30~194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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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독립투쟁의 일선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투사도 아니었고,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인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을 떠나서 도를 닦는다는 것은 한낱 오락에 불과하고, 공부나 시도 생활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의 시 정신은 어느 투사 못지 않게 치열한 바가 있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는 <서시>의 구절처럼, 그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독립한 나라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죽음의 나락에 빠진 민족을 사랑했고, 자신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며 한 몸을 민족의 제단에 제물로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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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尹東柱,1917.12.30~1945.2.16)는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견주어 노래한 민족시인이다.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서 아버지 윤영석(尹永錫, 1895-1962)과 어머니 김용(金龍, 1891-1947)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명동촌은 1899년 2월 함경북도 종성 출신의 문병규(文秉奎), 김약연(金躍淵), 남종구(南宗九)와 회령 출신의 김하규(金河奎) 네 가문의 식솔 140여명이 집단 이주해 세운 한인마을로, 북간도 한인 이주사에 이정표를 마련한 곳이었다.


윤동주 집안의 북간도 이주는 증조부 되는 윤재옥(尹在玉)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재옥이 43세 때인 1886년 부인과 4남 1녀의 어린 자녀들을 이끌고 본래 살던 함북 종성군 동풍면 상장포를 떠나 두만강 건너편 자동(紫洞. 현재의 자동(子洞))에 처음 자리잡으면서, 윤동주 집안의 북간도 생활은 시작되었다. 북간도 이민 초창기에 자동으로 이주한 윤재옥은 부지런히 농토를 일구어 주변에서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수성가하였다. 그리고 1900년 조부인 윤하현(尹夏鉉, 1875-1947) 때 명동촌으로 이사하여 명동 한인마을의 한 식구가 되었다.


윤동주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북간도 명동촌은 일찍부터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구자의 마을이었다. 북간도 최초의 신교육기관은 1906년 10월경 이상설(李相卨) 등이 용정(龍井)에 설립한 서전서숙(瑞甸書塾)이었는데, 이듬해 4월 이상설이 헤이그 특사로 떠난 지 몇 개월 안돼 문을 닫고, 그 뒤를 이은 것이 명동촌의 명동서숙(明東書塾)이었다. 명동서숙은 앞서 김하규, 김약연, 남위언이 한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세 군데 서재를 하나로 합치고, 서전서숙 교사 출신의 박무림(朴茂林)을 초대 숙장으로 모셔와 1908년 4월 문을 열었다. 명동서숙으로 출발한 명동학교는 1909년 신민회 회원 정재면(鄭載冕)이 교사로 부임해 교장 김약연, 교감 정재면의 체제를 갖추면서 신학문과 민족의식을 가르치는 신교육기관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명동학교에서 정재면은 학생들에게 신학문뿐만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리하여 부임 첫 해에 명동교회가 설립되고, 이후 마을사람 거의 모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커다란 변화가 있게 되었다. 1910년 명동학교에 중학교 과정이 만들어지고, 이듬해 여학교가 설립되면서 명동촌은 북간도 민족교육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윤동주의 아버지 윤영석이 15세 나이로 명동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정재면이 교사로 부임해 마을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 1909년이었다. 이듬해 명동학교 교장 김약연의 이복 누이동생인 김용과 결혼한 윤영석은 1913년 3월 문재린 등과 함께 중국 북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와 모교인 명동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윤동주가 태어날 당시 그의 집안은 명동촌에서도 벼농사를 하는 몇 집 가운데 하나로 넉넉한 가세를 자랑하였다. 그가 태어난 집은 학교촌 입구 자그마한 과수원에 둘러싸인 큰 기와집으로 가랑나무가 우거진 야산기슭 교회당 앞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북간도 민족교육의 거점인 명동소학교 입학…손수 <새 명동>이라는 잡지 펴내


윤동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큰 마을 명동촌에서 28년 생애의 절반인 14년을 보내며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이와 관련해 한가지 눈 여겨 볼 것은 그의 어린 시절 아명이다. 윤동주의 아명은 ‘해처럼 빛나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준 해환(海煥)이었다. 아버지 윤영석은 자식들 이름에 ‘해’ ‘달’ ‘별’을 차례로 붙여, 윤동주의 아우인 일주에게는 달환(達煥), 그 밑에 갓난애 때 죽은 동생에게는 별환이라는 아명을 지어주었다. 윤동주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널리 알린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렇게 그의 아명 속에서 이미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윤동주의 성장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영향이다. 명동교회의 장로로 도량이 넓었던 할아버지 윤하현과 집안의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윤동주는 유아세례를 받고 어릴 적부터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기독교정신을 배우며 자랐다. 또 1912년 결성된 북간도 최초의 한인자치단체 간민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외삼촌 김약연의 영향 아래 일찍부터 민족의식에 눈뜰 수 있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기독교신앙, 그리고 민족주의가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기름진 토양 속에서 풍요롭게 자라난 시인 윤동주는 1925년 만 8세의 나이로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다. 3.1운동 이후 북간도 대한국민회가 조직되고, 국경선 일대의 봉오동․청산리 등지에서 치열한 독립전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명동학교 출신들이 보여준 활약상에 잘 나타나 있듯이, 그가 다닌 명동학교는 수많은 민족지사를 배출한 북간도 민족교육의 거점이었다. 그래서 1920년 10월 ‘간도 대토벌’에 나선 일본군에 의해 1918년 신축된 양옥 벽돌교사가 불타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불탄 교사는 1922년 원상복구가 되었지만, 윤동주가 입학할 무렵 명동학교의 형편은 썩 좋지 않았다. 1920년 캐나다 장로회 선교부가 북간도 교통의 요지인 용정에 은진중학교, 명신여학교를 세워 교육의 중심이 용정으로 이동한 데다, 갑자년 가뭄으로 인한 경영난까지 겹쳐 윤동주가 입학하던 1925년 명동중학교가 문을 닫은 때문이다. 명동소학교도 1929년 교회학교에서 공립으로 넘어갔다.


명동소학교 시절의 윤동주는 유순하고 눈물 많은 소년이었다. 동기동창으로 윤동주 집에서 석 달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宋夢奎)와 김약연의 조카로 윤동주와 외사촌간이었던 김정우, 그리고 문재린 목사의 아들인 문익환 등이 있었는데, 모두 문학 방면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서울에서 발행되던 <<아이생활>> <<어린이>> 등의 잡지를 구독하며 문학소년의 꿈을 키우던 윤동주와 동기들은 5학년 때인 1929년 손수 원고를 모아 편집해서 <<새 명동>>이라는 잡지를 등사판으로 발간하기도 하였다. 1931년 3월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송몽규 등과 함께 대랍자(大拉子)에 있는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해 1년을 더 다녔다. 대랍자는 명동에서 동쪽으로 10리쯤 떨어진 화룡현 현청 소재지였는데, 윤동주와 송몽규는 명동에서 대랍자까지 십 리 길을 날마다 걸어서 통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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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중이다가 귀국했던 때의 윤동주와 송몽규 등 사진. 뒷줄 맨 오른쪽이 윤동주.


만주 용정 은진중학교에선 축구 선수로, 잡지 편집자로, 웅변 1등상 수상자로 활기찬 생활


윤동주가 대랍자 소학교에 다니던 1931 늦가을 윤동주의 집은 명동에서 북쪽으로 30리쯤 떨어진 해란강 하류의 소도시 용정으로 이사했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무장단의 출몰이 잦아지자 농토와 집을 소작인에게 맡기고 신변안전이 보장되는 도회지로 이주한 것이다. 용정은 한인들이 모여 사는 거점도시로 일본 간도 총영사관이 위치해 있었다. 중국 관청이 밀집한 연길(延吉) 더불어 북간도의 양대 거점을 이루었던 용정에서 윤동주의 아버지 윤영석은 인쇄소를 차리고 도회지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내 실패하고 포목점을 비롯한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대어 보았지만 부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집도 과수원이 딸린 기와집에서 용정가 2 1 36호의 20 정도되는 초가집으로 바뀌어 옹색한 생활을 해야 했다.


용정에서 윤동주는 1932 4 명동소학교 동창인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은진중학교에 진학하였다. 16 때의 일인데, 이름을 아명인 해환 대신윤동주 쓰기 시작한 것도 때부터였다. 은진중학교는영국덕이라 불린 용정 동남쪽 구릉에 위치한 미션스쿨로 명신여학교, 제창병원과 함께 캐나다 장로회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학교였다. 윤동주가 은진중학교에 입학한 1932년은 앞서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청조(淸朝)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명목상의 통치자로 내세워 괴뢰국 만주국을 세운 해였다. 그리하여 북간도는 만주국의 영토가 되었고, 실권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이 장악하였다. 그러나영국덕 학교와 병원들은 일종의 치외법권적 혜택을 받아 일본의 간섭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있었다.


동생 윤일주의 회고에 따르면 은진 중학교에서 윤동주는 축구선수로 뛰기도 하고, 교내 잡지를 내느라 밤늦게까지 등사 글씨를 쓰기도 하고, 옷맵시를 내느라 혼자 재봉틀을 돌리기도 하면서 활기찬 학창생활을 보냈다.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 1 상을 받기도 하고, 문학적 취향에 걸맞지 않게 기하학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지은 시에 날짜를 적어 보관하며 작품활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도 무렵부터였다. ‘1934 12 24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는 <초한대> 비롯한 편의 시가 그것인데, 여기서 빼놓을 없는 것이 역사와 한문을 가르치던 명희조 선생에게서 받은 감화였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불굴의 독립의지와 치열한 역사의식을 일깨워주는 한편으로, 중국 군관학교 등에 입교를 주선하기도 했다. <초한대> 나오는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 나의 방에 풍긴 /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구절은 같은 가르침에 대한 나름의 응답이었다. 민족의 제단에 바쳐진깨끗한 제물 위대한 향내를 맛보던 윤동주 자신 또한 뒤에 제물로 바쳐졌으니, 시인의 범상치 않은 예지를 읽을 있다.


정지용 시에 심취해 쉬운 말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 세계 열어


1935년 봄 고종사촌 송몽규가 낙양군관학교 한인반 2기생으로 입교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고, 문익환이 상급학교 진학에 대비해 5년제인 평양 숭실중학교로 편입해 가자, 은진중학교 4학년에 진급한 윤동주는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 그 해 여름 숭실중학교 가을학기 편입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 학년 아래인 3학년으로의 편입자격밖에 얻지 못하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1935년 9월 숭실중학교 3학년에 편입한 윤동주는 객지생활 7개월 동안 시 10편, 동시 5편 해서 무려 15편의 시를 쏟아냈다. 숭실중 학생청년회에서 발행하던 <<숭실활천>>(1935. 10)에 실린 <공상>은 그의 시 가운데 최초로 활자화된 작품이었다. 이 무렵 윤동주는 정지용(鄭芝溶)의 시에 심취해 쉬운 말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세계를 열어나갔다. 1935년 12월에 쓴 <조개 껍질>을 시작으로 1938년 연희전문 1학년 때까지 계속된 그의 동시 쓰기는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그런데 윤동주의 숭실중학교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1936년 1월 일제 총독부 당국이 신사참배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윤산온(尹山溫, George S. McCune) 선교사를 교장 직에서 파면하자 일어난 학생들의 항의 시위로 학교가 무기휴교에 들어간 때문이었다. 1936년 3월 문익환과 함께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용정에서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였다. “솥에서 뛰어내려 숯불에 내려앉은 격”이라는 문익환의 회고처럼 그들이 편입한 광명학원은 대륙낭인 출신의 일본인이 경영하던 친일계 학교였다. 그럼에도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은 상급학교 진학시의 편의를 고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광명중학에 재학하던 2년 동안 윤동주는 동시에 더욱 몰두하여 연길에서 발행되던 월간잡지 [가톨릭소년]에 모두 5편의 동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민족현실에 발악적인 일제의 광기를 고뇌로 승화, 속에 녹여


1938 2 광명중학을 졸업한 윤동주는 의과 진학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다. 송몽규는 앞서 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1936 4 제남에서 체포 압송되어 본적지인 함북 웅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석방된 전력이 있었다. 1937 4 대성중학교 4학년에 편입한 그는 이듬해 학교를 마치고 연희전문 문과 별과시험에 합격하여 윤동주와 다시 동문수학하는 사이가 되었다.


연희전문에서 윤동주는 최현배 교수의 조선어 강의와 손진태 교수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민족문화의 소중함을 재확인했고, 이양하 교수의 문학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해 나갔다. 연희전문에서의 4년간은 윤동주 나름의 시세계가 영글어간 시기였다. 그런데 그것은 참담한 민족의 현실에 눈뜨는 과정이었고, 거기에 맞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처절한 몸부림의 과정이었다. 연희전문 1․2학년 방학 고향에 들려 누이 혜원과 동생 일주에게 들려주었다는 태극기의 모양과 무궁화와 애국가, 기미독립만세와 광주학생운동 등에 대한 이야기가 무렵 그가 가진 역사의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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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새긴 윤동주 시비(詩碑) 사진. 일본 교토시 도시샤 대학 소재.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입학한 1938년은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조선에도 적용해 한민족 전체를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던 때였다. 때문에 그의 고뇌와 번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희전문의 기숙사를 나와 하숙생활을 시작한 2학년 때부터 동시 쓰기를 아예 그만두었다. 1939 동안 그가 시는 6편에 불과했는데, 그나마도 9월에 가서야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화상>에는 전쟁에 광분한 일본 군국주의가 단말마적 발악을 하는 속에서 식민지의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이 짙게 배어 있고, <투르게네프의 언덕>에는 기만적인 싸구려 이웃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있어 당시 그의 내면풍경을 엿볼 있게 한다.


이후 윤동주는 1940 12월까지 1 이상 절필을 한다. 1940 12월경에 <팔복>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구절처럼, 기간에 그는 민족의 처절한 수난에도 아무런 응답 없이 침묵을 지키는 신에게 대들었다. 1939 가을 용정 정안구(精安區) 제창로(濟昌路) 1-20, 캐나다 선교부 경내 경치 좋은 언덕에 세워진 집으로 집안이 이사하고 나서 방학 집을 찾은 윤동주에게 예전에 보았던 신앙의 열성을 찾을 없었다는 동생 윤일주의 회고처럼 무렵 그는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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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판결문(1944.3.31,교토지방재판소) . 일본 교토지방재판소는 1944 3 31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윤동주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하였다.


이런 오랜 고뇌와 번민의 터널을 지나 윤동주는 연희전문 졸업반이 되는 1941 모든 내적인 방황과 자신을 짓눌렀던 역사의 무게를 시로 승화시키기 시작하였다. “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무서운 시간>, 1941. 2)라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며, 나라 잃어 <간판 없는 거리>모퉁이마다 / 자애로운 와사등에 / 불을 켜놓고어진 사람 사람들의 손목을 잡고 보듬는 따뜻한 민족 사랑을 시로 녹여 나갔다. 졸업을 앞둔 11 윤동주는 때까지 써놓은 시중에서 18편을 뽑고 여기에 <서시>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었다. 그는 자신의 시집 원고를 3 필사해 1부는 자신이 갖고, 1부는 이양하 교수에게, 1부는 함께 하숙하던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다. 1부를 이양하 교수에게 바친 것은 출판을 주선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교수의 답변은 출판을 보류하라는 것이었다. 일제 관헌의 검열을 통과할 없을뿐더러 신변에 위험도 따를 있다는 판단에서였던 듯하다. 그리하여 그의 시집 출판은 해방 이후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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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이 2017.02.18 17:41
    윤동주의 자료모음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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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정월 대 보름 - 최화숙

    한 여인의 소박한 밥상, 소박한 마음이 담긴 소박한 글, 문학엔 문외한인 저의 마음에 와 닿네요. 정월 대 보름 최화숙 (하얼빈) 오늘은 정월 대 보름이라 밥상에 차려진 소박한 음식들 오곡 밥.나물 볶음.갈비 찜에 잡체 무침. 달래.민들레 .치크리 . 파란 ...
    Date2017.02.11 Category시,랑송 Views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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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어머니의 세월 - 난초 작사, 주학민 작곡

    어머니의 세월 작사: 난 초 작곡: 주학민 노래: 인향자/김광빈 어머니는 꽃으로 피였다가 꽃입되여 꽃길에 누우셨다 스쳐가는 세월의 길목에서 어머니의 세월도 흘러간다 아, 꽃잎은 간다 삼베 저고리에 봄비 내리면 스쳐가는 봄허리 휘잡으시고 허리에 세월...
    Date2017.02.10 Category음악 Views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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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시랑송_와~ 눈이다 - 김연 (영상시)

    와~ 눈이다 김연 와~ 눈이다 신난다 하늘 향해 두팔을 힘껏 벌려 내리는 눈을 포옹한다 내 품에 마구 날려드는 눈송이들 뜨거운 얼굴을 덮고 작은 가슴에 넘쳐난다 만남을 이루고 희열을 나눈다 남실남실 내려앉는 눈송이 하나둘씩 머리카락 적신다 내 딸아, ...
    Date2017.02.05 Category시,랑송 Views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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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내고향 봄바람 - 김영준 작곡

    내고향 봄바람 작사: 김성우 작곡: 김영준 노래: 김순희 내 정든 고향땅에 봄바람 불어오며는 동삼내 얼었던 강물 풀리여 흐르네 강변의 버들숲에 뻐꾸기 님 불러 울고 고향 떠난 우리형제 아리랑노래 부르면서 돌아 온다네 내고향 봄바람 사랑의 봄바람 내고...
    Date2017.02.09 Category음악 Views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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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독일 기타리스트 토비아스 빌덴(Tobias Wilden) 'Daybreak' 라이...

    독일 기타리스트 토비아스 빌덴(Tobias Wilden) 'Daybreak' 라이브 연주!
    Date2017.02.08 Category동영상 Views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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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솔리앙상블 - 슈만 : 어린이의 정경 Op. 15 中 No.7 '트로이메라이'

    솔리앙상블 - 슈만 : 어린이의 정경 Op. 15 中 No.7 '트로이메라이'
    Date2017.02.08 Category동영상 Views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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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정정아 노래

    1965년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은 1967년 문공부로부터 작곡상과 가창상을 수상했고, 무궁화훈장을 수상한 공전의 히트곡이다. 비록 <섬마을 선생님>은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였지만 이미자의 대표곡으로 인식된다. 박춘석과 이미자 ...
    Date2017.02.07 Category동영상 Views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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