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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 17:11

시의 운율론-이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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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운율론
              
이양우
   
    시의 음악성, 시의 가락성, 리듬과 화음, 톤, 기기절묘등등의 음악적 소지라는 입장에서 시를 음악적 효과를 의도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칭하는 “시의 음악성”이라고 하는 것은 가락이 아름답다. 명쾌하다. 구슬프다. 기쁘고 즐겁다. 행복감을 준다. 깨우침을 준다. 등등 많은 입지적 영향을 받는다고 간주할수 있다.

    음악 그 자체의 령역에서 시를 설명할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고, 시를 청각을 통해서 귀에들리는 형식만으로서 음향성만을 가지고 도취된다는 것은 있을수가 없고 의미의 내포상태를 감정에 대입함으로서 감촉하는 것이 정상적인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례를 들어서 우리가 어느 가곡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음악성의 아름다움 고고함 기쁨 즐거움 슬품 희열과 황홀을 느꼈다는 현상과는 시의 음악성이란 판이한것이다.

    음악성에서 주는 황홀감은 가사가 아니라 소리의 형태에 따른 것이 십중팔구일것이다. 그러나 시의 음악성이란 랑송자의 음악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내용상의 의미를 음미하는 것이다. 일반적 가곡의 실재의 경우는 리듬이나 음악적 현상에 따른 감정수신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시의 음악성이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 하게끔 하는 언어유희적 기기절묘와 황홀감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의 운률이란 결국 의미의 멜로디라고 생각하면 될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이란 양(量)인것이요. 시란 질감(质感)인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음악이란 외적인것이라고 본다면 시란 내적인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시는 의식속에 산물로 인간의 심성을 자국하는 동시에 그 내적 질감을 통한 언어상의 표현이고 사상과 감정의 내외연적 표현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랑송의 경우도 그 음악성, 그시의 랑송자의 음악적 태도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를 랑송하는 자의 시적 질감에 있는 것이다.

    물론 내용에 대한 음유라는 것도 랑송시에서는 무시할수가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의미를 내면에 두고 감각적 음향적인것이 감상자의 심성을 공명시켜주기때문이다. 시는 단순히 공명의 한계를 넘어설수 없다.

    만약에 시가 음악이라고 한다면 시는 음악에 비하여 그 얼마나 무력하고 건조로운 것일까? 례를 들어서 <보들레르>의 시가 단순한 음악성에 그쳤다면 그 시는 그 시를 작곡한 <바그너>의 작곡위상에 비하여 그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빈약한것일까? 시가 음악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음악성이란 음의 질, 음의 령역을 초월하는 시의 내재적 질, 의미상의 절묘성의 멜로디 소위 운율이라고 하면 어떨까? 내용의 억양, 내용의 고저, 내용의 리듬, 내용의 바이브레이션, 내용의 화성학적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시 가운데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언어의 음악성이 시속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결국 정당하지 않을 것이다. –박정온 시론에서-> 음악성이 내재될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가 음악성에 고정소지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가 음악인 한은 그 시는 내용이 빈약한 의미가 결핍된 음질, 끝내 음역을 넘어서지 못할 존재로 하락하고 말것이다. 시가 경험하는 심각한 내용물을 전달하지 못할것이다. –영국의 가롯->

    그렇다고 운율이란 아예 불필요한 존재인가? 내 생각에는 전연 그렇지만은 않다. 절대 필요한것이다.  의식속에 흐르는 본질적 멜로디가 시심속에는 면면히 흐르고 있기때문이다.

운율에 대하여

1.

    운율이란 쉽게 설명하자면 음악성의 내면이라 하면 될것이다. 이것이 개입되지 않는 정형시는 무미건조하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자유시에서 운율은 거론될수 없는 것일까? 음수율 음위율 음색율에 구애받지 않는 다는 것이 자유시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두운이나 요운이나 각운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형태이다. 그러나 자유시에서의 형태 내부의 운율은 시의 함축성과 일맥상통한다. 즉 함축성의 운율미학이란것이 필요하다. 음질의 색소와 음량의 감동과 음소의 내광을 총칭하여 음운률 또는 파동이라 할것이다.

    인간이 소리를 만들어내지만 그 소리의 본질은 자연 존재하는 음소(音素)가 있다. 그 음소파(音素波) 판(板)이 바로 자연의 기운이다. 기운은 바람으로 빛으로 또는 공간을 진동시키는 자장인것이다. 이것이 시에서는 운율의 본질이라 하고 음악자체에서는 음의 조율(调律)재료라 할것이다.

    세상은 온갖 소리들로 둘러 싸여있다.

    이것이 시의 운율에서 내면성이라 한다면 그 소리는 정막, 정적속에서 깊숙히 묻혀있는 것인데, 일반적 음악에서는 그 소리가 표면에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운율의 본연(本然)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이라든가, 한 폭의 산수화와 같이 고요히 잠든 호수의 아름다움에 접할때,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정적을 깨닫게 되겠지만,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순간에도 새 소리, 곤충 소리, 실개천 흐르는 소리,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숨결 소리 등 온갖 형태의 소리를 누구나의 귀에서 읽을수 있다. 인간의 귀에서 생동하는 소리를 표면적 소리라 하고, 인간의 마음에서 파동하는 소리르 ㄹ내면적 소리라 한다. 이 소리에 대한 감지를 인식이라 한다. 시는 내면적 인식의 소리인것이다. 이것을 생각으로 음율화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으로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생성된 소리가 곧 시의 운율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소리들은 한개의 규칙적인 리듬, 즉 율동을 지니고 있다.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긴 소리와 짧은 소리 등등> 문덕수(文德守)의 문학개론에서-

    시는 한 작품의 의미의 발성체로 구성된 의미의 고저 장단, 폭과 경사면, 안과 밖의 율동원리에 의해서 발생한다.

    <모든 문예작품은 첫째 의미를 발생시키는 바탕이 되는 소리의 연속체이다. 말은 소리의 단위이면서 동시에 의미의 단위이기도 하다. 소리는 의미의 반향(反响)이다>

    정형시에 있어서 운율은 필수적이지만 자유시에 있어서의 운율은 내면적 의식소지라고만 보아야 할것이다.

2.

    현대시에서 운율을 론의 할때 그 운율적 음악성을 신비적 시흥의 감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의 음악성을 전연 무시하는 경향의 사람들이 있다.

    운율이란 필요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 무시하는 현대자유시의 경우만을 제외하고는 시에서 발산하는 음악성운율의 향기는 풍기면 풍길수록 좋은 것이라고 본다.

    시의 화장술은 표현의 일종으로서 음악성이 어느 정도 시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역활(役活)자라고 본다.

    자유시에서의 운율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건 다듬지 않은 시로서의 거칠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일수가 있다. 그것이 자유분방의 초연성의 본질이 아닌가.

    자유시가 운문과는 전연무관하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시를 그려내고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음악성이 어느 정도 개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시의 구성요소중에서 시어는 단순한 말소리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말뜻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의 운율은 <말소리와 말뜻>의 상관접속에 연접해 있다. 이러한 엇물린 상호유기적 관계를 떠나서는 시가 될수 없다.

    운율만을 따로 떼어내서라거나 말소리가 말뜻과 함께결합해서 시 한편이 조화롭게 탄생되어지는 것이다.

    자유시를 생각할때 혹자는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주장만으로 말뜻만 가지고 시적 의미, 시적 감흥, 감성적 매료를 느낄수 있다고 하지만 필자의 경우는 감성적인 언어와 운치적인것이 함꼐 어울려서 원만한 내용의 조화를 이루는 시가 탄생된다고 믿는다.

    즉 말소리와 말뜻이 상호유기적 관계가 이어져 소위음양조화를 갖는 시다운 효과적 시가 탄생된다는 주장이다.

    시에서의 운율은 시의 천성적 본질이라는 견해이다.

    잘 이뤄진 작품일수록 말소리와 말뜻이 효과적으로 배려되어 있는 것이다.

     <새로운 말뜻에는 새로운 말소리가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일에 한 작품에서 새로운 말소리가 일부분 바뀌게 된다면 새로운 말뜻도 일부분 바뀌게 된다는 상호 유기적 밀접한 관계를 리해해야 한다.>-김시태의 운율론-

    이것은 창작 즉 시의 질서적 고리요 분해불가한 관계요, 이럴때 그 시의 내면에 “리듬”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시름에 잠길래요
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운 꽃닙마저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쳐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全文)-

    위의 작품속에는 흐르는 음율의 맥박, 음운의 간격, 언어적 질서, 감성적 의지, 말뜻, 말 소리, 음의 색소, 흥취감을 주는 달큰한 맛, 언어적 예절까지 포괄한 연질감을 씹는 듯한 시적 리듬 등을 느끼게 된다.

    직접 혓바닥에 감촉되어지는 것 같이 감상자의 눈과 귀와 입에 코에 그리고 숨결 다정한 목소리를 전달해 주는 듯하다.

    말뜻과 말소리간의 기능적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시란 진실로 예술지상주의 적 철학성마저 배제할수는 없다. 시예술은 유미주의적 관점에서 충실히 배려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김영랑의 시<모란이 피기까지는 >은 ㅅ · ㄹ 음간의 청신한 상호대음관계로 발전한 작품이다. 음색면에서도 의미면에서도 충분한 시적 감흥을 자아내고 있다. 

출처: 다음까페 가사동네 이양우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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